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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대제국 '카르타고' – 한니발과 로마의 악연 잊혀진 대제국 '카르타고' – 한니발과 로마의 악연한니발과 로마의 악연로마 제국의 역사는 지금도 전 세계 역사 교과서의 중심입니다.하지만 그 위대한 로마 제국조차 한때 두려워했던 나라가 있었습니다.지중해를 무대로 번영했던 ‘카르타고’.오늘날에는 그 흔적조차 뚜렷하지 않지만, 한때 로마와 대등한 수준의 힘을 가졌던 강대국이었죠.특히 로마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입니다.그는 한때 로마의 심장까지 위협하며 역사의 흐름을 뒤흔들었지만, 결국 패배했고, 카르타고도 함께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카르타고는 어떤 나라였을까?카르타고는 현재의 튀니지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었던 고대 국가입니다.기원전 9세기경, 페니키아인의 식민지로 출발한 카르타고는 뛰어난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빠르..
‘로마의 방화범’ 네로 황제, 진짜 불을 질렀을까? 로마의 방화범 네로, 황제가 정말로 불을 질렀을까?로마 제국의 황제 네로는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황제 중 하나로 꼽힙니다.그의 이름은 곧 ‘방화’와 ‘광기’, ‘예술적 퇴폐’를 떠올리게 합니다.특히 “로마 대화재는 네로가 불을 지른 것”이라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통용되는 이미지입니다.하지만 실제로 네로 황제는 로마를 불태운 장본인이었을까요?오늘은 이 상징적 이야기를 역사적 관점에서 파헤쳐보려 합니다.로마 대화재의 전말과 네로의 모습서기 64년, 로마는 사람 손으로 닿기 어렵게 번성한 도시였습니다.그러나 어느 날 밤, 시내 중심부에서 시작된 불은 바람을 타고 빠르게 퍼졌고, 총 6일 밤낮에 걸쳐 도시의 대부분을 불태웠습니다.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삶의 기반이 무너졌으며, 문화유산과 건축..
폼페이 최후의 날, 그날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폼페이 최후의 날, 그날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로마 제국의 도시 폼페이는 기원후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인해 순식간에 사라진 도시입니다.그날의 재앙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생생하게 다가오며, 고대인의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그럼 그날, 폼페이 사람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까요?오늘은 '폼페이 최후의 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평범했던 그날 아침폼페이는 로마 귀족들의 휴양 도시로 잘 알려져 있었고, 지중해성 기후와 비옥한 땅 덕분에 번성하던 도시였습니다.그날도 사람들은 어김없이 일상을 시작했습니다. 시장에서는 과일과 빵, 와인이 거래되었고, 거리의 테르모폴리움에서는 간단한 식사가 제공됐습니다.귀족들은 대저택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상인들은 장사를 준비했으며, 아이들은 광장..
조선의 황제가 꿈꾼 군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의 비밀 조선의 황제가 꿈꾼 군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의 비밀대한제국 시기, 고종은 국권을 지키고 조선을 근대국가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군대 개혁'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군제의 문란과 외세의 압박으로 인해 국방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이를 회복하려는 고종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 바로 육군무관학교의 설립이었다.근대 장교 양성소의 탄생1898년 7월 1일, 군사 개혁의 일환으로 육군무관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는 대한제국 정부가 신식 군대 체계를 도입하려는 중요한 조치였으며, 약 200명의 생도가 1기로 입학하여 장교 양성을 시작했다. 육군무관학교는 조선의 전통적인 무과 제도를 탈피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신식 군인을 양성하는 기관이었다.과정은 총 3개로 나뉘었으며, 1·2과는 속성..
아편전쟁, 단순히 마약전쟁이 아니었다 – 무역과 제국주의의 폭력 아편전쟁, 단순히 마약전쟁이 아니었다 – 무역과 제국주의의 폭력무역과 제국주의의 폭력‘아편전쟁’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하지만 그 전쟁이 단순히 중국과 영국 간의 마약 거래 갈등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너무나 단편적인 해석일 수 있습니다.아편전쟁은 단지 약물 문제를 둘러싼 충돌이 아닌, 서구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어떻게 무역을 무기로 삼아 아시아를 침탈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이 전쟁은 그저 한 나라의 패배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근대사를 뒤흔든 거대한 전환점이기도 했습니다.전쟁의 시작, 영국의 무역 적자18세기 말,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심각한 무역 적자를 겪고 있었습니다.당시 유럽인들은 중국의 차, 도자기, 비단을 매우 선호했지만, 중국은 서구 물품에 관심이 없었고 은만을 ..
세계 최초의 여성 외과의사, 고대 이집트의 메리트파트 이야기 세계 최초의 여성 외과의사, 고대 이집트의 메리트파트 이야기‘외과의사’라는 직업은 흔히 강한 체력, 뛰어난 집중력, 깊은 지식과 숙련도를 요구하는 전문 분야로 여겨집니다.그래서인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주로 남성들이 주도한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했죠.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수천 년 전 고대 문명 속에서 외과의사로 기록된 여성이 있습니다.바로 고대 이집트의 메리트파트입니다.오늘은 우리가 잘 몰랐던,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계 최초의 여성 외과의사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메리트파트는 누구였을까?메리트파트는 기원전 약 2700년경, 고대 이집트 제2왕조 시기에 활동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녀의 이름은 사카라 지역의 무덤 벽에 새겨진 글을 통해 발견되었으며, 그 옆에는 그녀가 '왕의 수석 의사'였..
명나라 시대 실크로드를 뒤흔든 여성 해적 명나라 시대 실크로드를 뒤흔든 여성 해적정씨 부인의 전설역사 속 해적이라고 하면 대개 카리브 해의 남성 해적이나 일본의 왜구를 떠올리기 쉽습니다.하지만 중국 명나라 시대에도 실크로드를 무대로 활약했던 전설적인 여성 해적이 존재했습니다.그 이름은 바로 '정씨 부인(鄭氏婦人)'입니다. 그녀는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지중해와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교역 루트를 좌지우지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평범하지 않았던 출신정씨 부인은 원래 어부의 딸이거나 창춘 지역에서 태어난 평민 출신이라는 설이 있습니다.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남성 못지않은 강단과 지략을 가졌으며,해안가의 상인들과 왜구, 해적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항해술과 무역 지식을 익혔다고 합니다.이후 명나라의 몰락기, 즉 중앙 권력이 약화되고 해안 지역에서 치안이 무너..
사라진 도시 아틀란티스 – 실제 있었을까? 사라진 도시 아틀란티스, 실제 있었을까?“깊은 바닷속 어딘가, 잊혀진 문명이 잠들어 있다.”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신비한 전설, 아틀란티스.수천 년 전,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이 도시는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입니다.하지만 이 전설은 단지 허구일까요, 아니면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했던 도시일까요?아틀란티스의 처음 이야기한 사람은 누구일까?아틀란티스라는 도시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입니다.기원전 4세기경, 그는 『티마이오스』와 『크리티아스』라는 저서에서 아틀란티스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플라톤에 따르면, 아틀란티스는 고대 아테네보다도 오래전 존재했던 대제국으로, 뛰어난 기술력과 문화를 자랑했다고 합니다.그러나 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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