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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근대화 도전
똑소리동동
2025. 8. 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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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근대화 도전
개화기의 개혁과 갑신정변, 갑오개혁
19세기 말 조선은 역사상 가장 큰 전환점에 놓여 있었다.
외세의 압박은 갈수록 거세졌고, 내부적으로도 시대에 뒤떨어진 신분제와 행정체계는 개편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일부 지식인과 관료들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 속에서
조선을 근대국가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시작했지.
1. 개화파의 등장과 개혁의 시작
개화파란?
- 외세의 기술과 문물을 수용하여 조선을 근대화하자는 세력
- 대표 인물: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
- 친일적 성향의 급진파와 청에 우호적인 온건파로 나뉨
개화파는 일본을 모델로 한 빠른 개혁을 원했던 급진파와
청나라 체제에 의지하며 점진적 개혁을 원했던 온건파로 나뉘었어.
2. 갑신정변 (1884년)
배경
- 일본의 지원을 받아 빠른 근대화를 추진하려는 급진 개화파의 주도
- 청의 내정 간섭과 보수파 관료의 반대에 대한 반감
- 일본이 갑작스레 청과 전쟁 직전 상태가 되면서 청군이 일부 철수한 틈을 노림
전개
- 1884년 12월 4일, 개화파 인사들이 궁궐을 점령하고 정권 장악
- 급진적 개혁 14개조 발표
- 문벌 폐지
- 과거제 폐지
- 탐관오리 축출
- 재정 일원화
- 인민 평등 보장 등
실패
- 청군이 곧바로 개입해 정변은 3일 만에 진압
- 김옥균 등 주요 인사는 일본으로 망명
- 조선 조정은 다시 보수화되고 청나라의 간섭은 더 심화
3.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1894~1896)
동학농민운동
-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 봉기
- 동학(후일 천도교)의 평등사상 + 삼정 문란에 대한 저항
- 전주성 점령 → 전주화약 체결 → 청과 일본이 개입
- 청·일 전쟁의 계기가 됨
갑오개혁 (1차 개혁: 1894년)
- 일본이 정권에 개입해 군국기무처 설치 후 개혁 주도
- 주요 내용:
- 신분제 폐지 (양반, 상민 구분 철폐)
- 과거제 폐지
- 근대적 군제와 교육 제도 도입
- 조세금납화, 재정 개편
갑오개혁 (2차 개혁: 1895년)
- 고종이 개혁의 주도권을 잡으며 일부 방향 전환
- 홍범 14조 발표: 개혁의 원칙 제시
- 지방 행정, 교육, 법률 체계 등 정비
4. 개혁의 한계와 반발
- 외세 주도의 개혁: 청, 일본, 러시아 등이 주도권 다툼
- 백성의 참여 부족: 대부분 상층부의 논의에 머무름
- 보수파 + 민중의 저항: 을미사변, 단발령 등으로 갈등 심화
- 결국 고종은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아관파천)
→ 갑오개혁은 중단되고, 친러 정책으로 전환됨
5. 마무리 및 느낀점
개화기 개혁과 갑신정변, 갑오개혁은 조선이 새로운 시대를 향한 첫 걸음이었다.
하지만 그 걸음은 내부의 합의 없이, 외세의 도움에 기대 이루어졌기에
쉽게 무너지고, 외교적 갈등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어.
조선은 이 시기 근대화를 이룰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여러 차례 가졌지만,
보수파의 반발, 민중의 소외, 외세의 과도한 간섭으로 인해
스스로 개혁을 완성하지 못한 채 침탈과 식민지화의 길로 빠지게 되었지.
이 시기의 가장 큰 교훈은 "진정한 개혁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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