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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고문은 모두 잔혹했을까? – 실록 속 형벌 제도의 진실

똑소리동동 2025. 8. 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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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고문은 모두 잔혹했을까? – 실록 속 형벌 제도의 진실


🧷 1. 고문은 ‘무조건’이 아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조선 시대 고문이 마치 일상처럼 그려지지만,
사실 조선은 법과 절차를 매우 중시한 사회였습니다.

📜 《경국대전》에 따르면, 고문을 하기 위해선
사헌부 또는 의금부의 허가
삼심(三審, 세 번의 신문)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했습니다.

또한 노약자, 여성, 임산부, 고위 관리 등은
고문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어요.

조선시대 법정 풍경. 관복을 입은 판관이 앉아 있고, 백성이 고개를 숙이며 판결을 듣는 장면.


🧱 2. 조선의 형벌 5단계 – 오형(五刑)

조선은 형벌을 다섯 가지로 구분했어요. 이것을 **‘오형(五刑)’**이라 합니다.

  1. 태형(笞刑) – 엉덩이를 가볍게 때리는 벌 (주로 훈계용)
  2. 장형(杖刑) – 다리를 몽둥이로 때리는 벌 (통증 강함)
  3. 도형(徒刑) – 노동형, 일정 기간 관청 등에서 노역
  4. 류형(流刑) – 외딴 지방으로 유배
  5. 사형(死刑) – 가장 무거운 벌, 사망형

➡️ 이 형벌들은 죄의 경중, 신분, 나이 등을 고려하여 결정되었고
절차에 따라 판결문이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 3. 형틀도 종류별로 구분

  • 곤장: 몽둥이로 다리나 엉덩이 때림
  • 작형: 목에 나무틀을 씌워 수치심을 주는 형
  • 형틀(형틀에 묶기): 범죄자의 신체를 고정한 뒤 조사를 위한 구속 수단
  • 배막이 고문: 가장 잔혹한 고문 중 하나로, 날씨나 체온을 이용한 심리적 압박

하지만 대부분의 고문은 실제 적용보다 위협용으로 사용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 4. 형벌의 목적은 ‘교화’

조선의 법은 단순히 응징이 아닌,
백성을 바르게 이끄는 도구로 여겨졌습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형벌의 기본”
– 조선 성종 시기 사헌부 논의 중 발췌


🧠 내 생각

조선은 현대보다 더 ‘비인간적’이었다는 인식이 많지만
실제로는 시스템적 절차와 기록, 형평성을 중시했던 사회였다고 느꼈어요.
처벌보다는 교화와 재발 방지를 생각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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