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왜 훈민정음을 ‘몰래’ 만들었을까?
세종대왕은 왜 훈민정음을 ‘몰래’ 만들었을까?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건 좋은 일 아닌가요?”
“그런데 왜 반대를 무릅쓰고, 몰래 만들었다는 말이 나오죠?”
“당시엔 문자 하나 만드는 게 그렇게 큰일이었을까?”
훈민정음(訓民正音),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의 본래 이름입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지만,
사실 훈민정음의 탄생 과정은 매우 조심스럽고 은밀했습니다.
세종대왕이 왜, 어떻게, 누구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만들었는지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 훈민정음이란?
- 1443년 창제, 1446년 반포
-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즉 백성을 위한 문자
-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개발
훈민정음의 서문에도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내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글로 표현하지 못하니,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 글자를 만들었다.”
즉, 한자를 읽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한 문자였죠.
❓ 그런데 왜 ‘몰래’ 만들었다는 말이 나왔을까?
훈민정음 창제 과정은 매우 은밀하게 진행됐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유학자들의 극심한 반대
조선은 성리학 국가였고,
성리학자들은 **한문(漢文)**을 신성시했습니다.
“문자는 곧 문명의 기준이며,
오직 한문만이 바른 글이다.” – 유학자들의 인식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 건
→ 중국 중심 질서에 대한 도전
→ 성리학적 사유체계에 대한 위협
그래서 훈민정음 창제는 곧 유교 이념을 흔드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 특히 최만리 등 집현전의 원로 학자들은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백성을 오히려 어지럽게 만든다”는 상소문까지 올렸습니다.
2. 중국 명나라의 눈치
조선은 명나라에 사대(事大) 외교를 하던 나라였습니다.
→ 자국 문자를 만드는 것 자체가
→ "중국 문자를 거부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죠.
그래서 훈민정음은 초기에는 비밀 프로젝트처럼 진행됐고,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조차 공식적으로는 나중에 등장합니다.
3. 기득권층의 반발 우려
기득권 양반 계층은 한문 독점 = 권력 유지 수단이었습니다.
→ 백성들이 글을 읽고 쓰게 되면
→ 정보 독점 구조가 무너질 위험
훈민정음이 **‘백성용 문자’**라는 점이 오히려
기득권층에게는 위협적인 개혁이었죠.
🔍 실제로 얼마나 비밀리에 만들었을까?
- 세종은 집현전 일부 핵심 인물들만 참여하게 함
- “훈민정음”이라는 이름도 초창기엔 공식 문서에 잘 안 나옴
- 실제 창제 연도인 1443년엔 기록이 거의 없음 → 1446년에야 공표
→ 이 모든 점을 보면, 당대의 분위기를 고려해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당시 반대파 대표 인물 – 최만리
최만리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글자는 나라의 큰 틀인데, 함부로 만들 수 없습니다.
백성을 가르치기 위해 새 글자를 만든다지만,
이는 도리어 백성을 어지럽히는 일입니다.”
→ 결국 유교 원칙과 질서 중심주의에 사로잡힌 반대였죠.
✅ 마무리 요약
- 세종대왕은 백성을 위해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지만,
- 당대 성리학자들과 명나라의 눈치를 보며 비밀리에 진행
- 훈민정음은 지식 독점에 대한 도전, 지식의 평등화 시도였으며
- 그래서 당시에는 **‘위험한 개혁’**으로 받아들여졌음
오늘날엔 너무 당연한 문자지만,
그 당시엔 엄청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는 걸 알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