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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도 조선처럼 과거시험이 있었을까?

똑소리동동 2025. 7. 2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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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도 조선처럼 과거시험이 있었을까?

고려시대에도 과거시험 봤나요?
조선시대 하면 떠오르는 대표 제도 중 하나가 바로 과거제도죠.
양반이 되기 위한 필수 관문이자, 조선 사회를 떠받쳤던 중요한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과연 고려시대에도 과거시험이 있었을까요?
정답은... 네,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선과는 꽤 다른 점들도 있었어요.
지금부터 그 차이를 쉽게 풀어볼게요.

고려시대 궁궐 안 시험장에서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치르는 장면. 붓과 한지로 글을 쓰는 모습, 나무 책상과 전통 복식, 고풍스럽고 따뜻한 색감의 한국 전통 분위기


✅ 고려의 과거제도는 언제 시작됐을까?

과거제도의 시작은 광종(光宗, 재위 949~975)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광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귀족 세력을 견제하고,
신진 세력을 등용하려 했죠.
이때 들여온 제도가 바로 과거제도예요.

📌 "인재를 뽑는 기준을 출신이 아니라 시험 성적으로 바꾸자!"
→ 이게 바로 고려 과거제도의 출발점입니다.


📚 고려의 과거시험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을까?

고려의 과거시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시험 이름설명조선과 비교
제술과 문학 실력을 평가 (시, 부 등 작문 능력) 조선의 문과와 유사
명경과 유교 경전을 얼마나 잘 아는지 시험 조선의 생진과와 유사
잡과 기술직 (의술, 율학, 산학 등) 채용 시험 조선과 유사
 

📌 참고로 **무과(무관 시험)**는 고려 시대에는 정식 과거제에 포함되지 않았어요.
무관은 주로 **추천제(천거)**로 뽑혔습니다.


🧑‍🎓 응시 자격은 어땠을까?

  • 양인 이상 남성이면 응시 가능
  •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귀족, 유학자 가문 출신이 유리

조선보다 덜 형식적이지만, 문벌 귀족 사회인 만큼
특정 가문이 시험을 독점하는 경향도 있었어요.


🏆 합격하면 뭐가 좋았을까?

고려시대 과거 합격자는 대부분 **중앙 관직(문관)**으로 등용됩니다.
심지어 과거에 합격한 가문은 자식들도 고위 관직에 오를 확률이 높아졌죠.

✔️ 과거제도 = 고려판 엘리트 등용 시스템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특정 문벌 가문이 계속 합격시험의 공정성 문제가 생기기도 해요.
이게 훗날 조선이 과거제를 더 엄격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입니다.


✅ 고려 과거 vs 조선 과거, 뭐가 다를까?

항목고려시대조선시대
시작 시기 광종 때 (10세기) 태조 때 도입, 성종 이후 정비
응시 자격 양인 이상 남성 양인 이상, 문과는 천인 제외
시험 종류 제술과, 명경과, 잡과 생진과(소과) → 대과 체계
무과 존재 X (천거제) O (공식 과거에 포함)
합격자 선발 방식 실력 + 출신 가문 영향 큼 실력 중심 (성종 이후 강화)
 

🔍 정리하자면

  • 고려시대에도 과거시험이 분명히 존재했다!
  • 조선과 달리 무과는 없었고, 문벌 귀족 중심 운영이 많았다
  • 광종이 처음 도입했고, 이후 인재 등용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 조선은 고려의 한계를 보완해 더 체계적이고 공정한 과거제도로 발전시켰다

✏️ 마무리 Q&A

Q. 고려시대 과거시험에 여성은 응시할 수 있었나요?
❌ 아니요. 고려나 조선 모두 과거시험은 남성 양인 이상만 응시 가능했어요.

Q. 고려 과거 급제자는 기록이 남아 있나요?
⭕ 네! *‘고려사’*에 보면 과거 급제자의 명단과 합격 기록이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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