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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인도에 도착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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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인도에 도착했다고 믿었다?

– 대륙을 발견하고도 대륙을 몰랐던 남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죠?”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게 아메리카인지 몰랐다고요?”
“설마 진짜 인도라고 착각했어요?”
그렇습니다. 끝까지 그렇게 믿었습니다.

콜럼버스는 대단한 항해가였지만,
놀랍게도 그가 평생 추구했던 목적지인 ‘인도’에는 절대 도달하지 못했으며,
자신이 발견한 신대륙이 인도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믿지 않았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믿었는지, 당시 시대적 배경과 함께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5세기 말 유럽 항해자 복장을 한 콜럼버스가 신대륙 해안에 도착한 장면. 주변은 야자수와 이국적인 풍경이며, 콜럼버스는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음


🌍 콜럼버스가 원한 건 ‘인도’

  • 당시 유럽은 실크, 향신료, 금, 보석 등 아시아 무역에 집착하고 있었고
  • 육로는 오스만제국에 막혀 있었기 때문에, 바다를 통해 인도로 가는 길이 필요했어요.
  •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탐색 중이었고,
  • 콜럼버스는 반대로 **“서쪽으로 항해하면 인도에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 여기서 중요한 점: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건 알았지만,
지구의 크기를 ‘심각하게’ 작게 계산했습니다.
아시아는 생각보다 훨씬 멀었고,
→ 중간에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거대한 땅덩이가 있다는 것도 몰랐죠.


🛶 1492년, 항해는 성공했지만…

  • 1492년,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아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항해 시작
  • 첫 상륙지는 현재의 바하마 제도
  • 이후 쿠바, 히스파니올라(아이티·도미니카 공화국) 등지를 탐험하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가 인도다! 여기는 일본 근처고, 여기는 중국 근처일 거야!”

→ 실제로 그는 원주민을 ‘인디오(Indios)’라고 불렀고,
→ 그 이름이 훗날 **인디언(Indian)**이라는 단어로 정착되었죠.


🧭 그런데 왜 끝까지 그렇게 믿었을까?

1. 📏 지구 크기에 대한 오판

  • 콜럼버스는 지구의 둘레를 실제보다 약 30%나 작게 계산
  • 그래서 아시아는 금방 도달할 수 있다고 착각함

2. 🗺 당시 지도와 지식의 한계

  • 마르티넬리 지도 등 당시 자료에는 아메리카 대륙이 없음
  • ‘유럽 → 대서양 → 인도’라는 지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음

3. 🧠 자기 확신과 집착

  • 평생 항해를 정당화해야 했고,
  • 스페인 왕실에 “목표를 이뤘다”는 성과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 진실을 외면한 채 “나는 인도에 왔다”는 믿음을 고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 남들은 몰랐을까?

콜럼버스가 죽고 수십 년 후,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라는 탐험가가
→ “여기는 인도나 아시아가 아니라 전혀 다른 신대륙이다”라고 선언
→ 훗날 **그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America)**라는 이름이 붙게 됩니다.

📌 즉, 콜럼버스는 발견자는 맞지만, 진짜 신대륙이라는 건 몰랐던 셈.


⚰️ 콜럼버스의 마지막 말은?

  • 1506년 사망
  • 죽을 때까지도 “나는 인도 근처에 다녀왔다”고 믿었으며
  •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인식은 없이 생을 마감

그에게 아메리카는 단지 인도 앞바다의 작은 섬일 뿐이었죠.


✅ 마무리 요약

  • 콜럼버스는 평생 인도로 가는 항로 개척을 꿈꾸었고
  • 실제로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지만,
  • 죽을 때까지 그 땅이 인도 근처라고 믿었다
  • 이는 당시 유럽인의 지도 지식 부족, 자기확신, 정치적 이유 등이 복합된 결과였음
  • 그의 착각 덕분(?)에 신대륙이 ‘인디언’, ‘웨스트 인디스’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됨

✍️ 내 생각

콜럼버스 이야기는 우리에게 “발견”과 “이해”는 다르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아요.
그는 분명 새로운 땅을 밟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끝까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믿고 싶은 것만 믿은 인물이었죠.
한 사람의 집착과 오해가 세계지도를 바꾸고,
그 결과가 수세기 동안의 식민지 역사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단순한 해양 탐험 이야기 이상의 깊은 울림이 있는 에피소드라고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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