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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대규모 생화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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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대규모 생화학전

중세의 전염병과 인류의 전쟁

우리는 흔히 생화학전을 현대 전쟁에서나 등장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중세 시대에도 이미 인류는 '병'을 무기 삼아 적을 공격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는 군사 전략이라기보다는 절박함 속에서 만들어낸 ‘공포의 무기’였고,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파괴적이었습니다.
오늘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대규모 생화학전, 바로 1346년의 크림 반도 카파 공성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고대 초원지대 전쟁터에서 말을 탄 스키타이 전사가 불타는 항아리 또는 연기 나는 화살을 쏘고 있다.


카파(Caffa), 흑사병, 그리고 몽골군

14세기 중반,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세력들이 이 지역을 두고 경쟁했습니다.
특히 흑해 연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 카파는 제노바 상인들의 중요한 무역 거점이었고, 이곳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도 늘 존재했습니다.

1346년, 몽골계의 킵차크 한국(골든 호르드)이 이 카파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전쟁은 단순한 포위전이 아니었습니다.
포위 중이던 몽골군 진영에서 흑사병이 돌기 시작했고, 병사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가자 전세는 급변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몽골군은 병사들의 시체를 대포에 실어 성 안으로 퍼붓는 ‘생화학 공격’을 감행합니다.
흑사병에 걸려 죽은 시체를 일부러 성벽 너머로 날려보내어, 성 안의 사람들에게 감염을 유도한 것이죠.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대규모 생물학적 공격이었습니다.


흑사병의 확산과 인류의 악몽

카파 성 안으로 유입된 흑사병은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포위된 성 안에는 수많은 이탈리아 상인들이 있었고, 이들은 병을 피하기 위해 배를 타고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간 곳은 바로 유럽 대륙.

이탈리아 남부 항구에 도착한 배들과 그 안에 있던 사람들, 짐, 쥐와 벼룩을 통해 흑사병은 유럽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1347년부터 유럽에서는 ‘페스트 대유행’이 시작되었고, 불과 수년 만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즉, 크림 반도의 작은 공성전 하나가 전 세계적인 생화학 재앙의 시발점이 된 셈이었습니다.


당시의 기록과 증언

이 사건은 제노바 상인의 일기와 유럽의 수도사들이 남긴 연대기, 중세 연대기 작가인 지오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등에 간접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보카치오는 흑사병이 퍼지던 당시 피렌체의 참상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며,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현실까지도 언급합니다.

몽골군이 시체를 던져 감염을 유도했다는 기록은 현대 생물학전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사례로 언급되고 있으며, 이는 ‘전염병을 무기로 삼은 최초의 군사 전략’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현대 생화학전과의 연결

오늘날 생화학전은 국제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생물무기의 개발 및 사용은 ‘인도에 반하는 행위’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인류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질병과 병원체를 전략의 수단으로 삼아왔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사례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대 전쟁 윤리와 방역 체계, 국제 협약의 필요성을 강하게 일깨워주는 사례입니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때때로 '병'이 자연재해처럼 우리를 덮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사 속에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병’을 퍼뜨린 적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1346년 크림 반도 카파의 사건은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비윤리적인 선택도 서슴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단지 과거를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기억’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는 질병, 전쟁, 인간성이라는 복잡한 주제가 늘 얽혀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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